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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눈교육을 하는 이유
줄눈교육? 어쩌면 하지 않는 것이 나을 지도 모른다. 경쟁자를 양산하는 것과 같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눈교육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디아트는 줄눈교육 학원이 아니다
디아트는 줄눈시공을 하기 전, 하고 나서도 한참을 힘든 시기가 있었다.
카드비를 제 날짜에 결제해 본 적이 없었다.
지갑에 천원짜리 지폐 한 장 없이 몇 주를 지내기도 했다.
그 때의 습관으로 지금도 점심을 굶는게 익숙하다.
너무 절박해서 일면식도 없는 오토바이 가게에 찾아가서 외상으로 중고 오토바이를 구입해서 음식 배달을 하기도 했다.
할아버지 사장님이셨는데 도대체 뭘 믿고 외상으로 중고 오토바이를 주셨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빗길에 두 번 넘어지고 나서 ‘이대로는 죽겠다.’ 싶어서 그만 둘 때까지 배달대행을 했던 적도 있다.
지금은 사정이 조금 나아졌지만 그 시절의 기억은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줄눈교육을 시작한 이유는 그 때의 나에게 외상으로 오토바이를 주신 할아버지 사장님께 나만의 방식으로 은혜를 갚기 위함이다.
현실은 냉혹하다
줄눈시공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제대로 해야 살아 남을 수 있다.
이 일을 하시고 싶어 하시는 분들 대다수가 현재의 사회생활이 만족스럽다라고 말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상대적이긴 하지만 젊다면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시간과 기회가 있겠지만 인생이 반평생을 넘어가는 시기라면 또다시 실패를 반복해서는 안된다.
드라마 ‘미생’에서 회사생활은 전쟁터, 사회생활은 지옥에 비유를 했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패널티를 안고 싸운다면 남다른 무기가 있지 않고서는 이기기가 힘들다.
그렇다면 일만 제대로 배운다고 살아 남을 수 있을까?
실패해 본 자 만이 성공이라는 열매의 달콤함을 안다지만 가정이 있고 자녀가 있다면 더이상 실패하지 말아야 한다.
줄눈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다른 업체에서는 어떤 비젼을 제시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반대로 말리는 편이다.
하지 말라고 말려도 꼭 줄눈시공업을 해야겠다면 실패하지 않았으면 한다.
어중간하게 배우면 돈 버리고 시간 버리고 줄눈시장의 물만 흐려 놓고 퇴출되는게 부지기수다.
이왕 배우는 거 제대로 배워서 같이 상생했으면 하는 마음에 줄눈교육을 한다.
지금 오실 수 있으세요?
유튜브를 보거나 블로그를 보고 혹은 소개를 받아서 줄눈시공을 배우고 싶다는 연락이 가끔 온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떤 이는 전화를 하기까지 수 없이 망설이고 또 망설였을 것이다.
그 용기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전화상으로 들려 오는 목소리로 대략 짐작은 하지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대화 중에 대뜸 물어 본다.
“지금 오실 수 있으세요?”
이 질문으로 많은 것을 파악한다.
누구나 줄눈시공을 배울 수 있지만 누구나 성공하기는 어렵다.
거창하게 성공이라고 말은 하지만 별 것 아니다.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아쉬운 소리 하지 않으며 가족을 부양하는데 지장이 없을 만큼이 내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성공이다.
멋진 차를 타고 좋은 집에서 사는 것은 두번째다.
여성이거나 나이가 많다면 물리적인 힘이 약해서 상대적으로 더 힘들 것이다.
덩치가 크고 체중이 많이 나간다면 비좁은 공간에 쪼그리고 앉아서 작업하기가 고역일테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묻지 않는다.
지금 올 수 있는지 없는지만 물어 본다.
줄눈교육은 의무교육이 아니다.
가르치는 사람보다 배우겠다는 사람이 더 열정적이어야 한다.
교육을 받고 싶다고 문의했던 분들 중에 기본 여건이 좋은 분들도 많았다.
현재 홈케어 시장에 종사하고 있다거나 아주 가까운 지인이 도와 줄 준비가 되어 있다고 착각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나의 판단으로는 간절함이 부족했다.
결국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데 급변하는 상황에서 적극적이지 않은 태도는 살아남기가 어렵다고 판단한다.
디아트의 카카오톡 오픈 채팅으로 줄눈시공에 대해 문의도 있지만 줄눈교육에 대한 문의도 자주 오는 편이다.
나름의 간절함의 표현이었을 수 있지만 이 글을 읽지 않았거나 문자로만 문의하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올 수 있는지 묻지 않는다.
아주 강렬한 기억을 남긴 교육 문의자도 있었다.
아내가 남편의 직업을 알아보는 중이란다.
왜 남편이 직접 전화를 하지 않고 아내분이 전화를 하시냐니까 남편이 바쁘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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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일을 배워서 투잡으로 하고 싶다는 분들도 제법 있었다.
죽기 살기로 덤벼들어도 성공할까 말까 하는데 투잡?
이해는 한다. 당장에 생활비를 벌어야 하고 과연 줄눈시공이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지 확신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냥 안타까울 따름이다. 언제 해지하더라도 원금 보장되고 수익률 높은 금융상품은 없다.
두번째, 줄눈시공을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에 대한 글을 읽고도 하고 싶은지 고민해 보라고 말한다.
뜸이 들어야 밥이 된다
하루 교육, 일주일 교육으로 줄눈 일을 배운다?
모르겠다. 나의 능력부족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짧은 시간을 가르쳐서 욕 안듣게 할 자신이 없다.
줄눈시공을 빨리 배우고 싶어하시는 분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된다.
어서 빨리 배워서 창업을 해야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급하다.
하지만 일을 제대로 배우지 않은 상태에서 창업을 하게 되면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다분하다.
줄눈 일? 간단하게 설명하면 땅 파서 약 넣는게 끝이다.
눈으로 배우겠다면 디아트의 유튜브를 시청하면 된다.
하지만 몸으로 익혀야 하는 일을 글과 눈으로 배워서 제대로 할 가능성이 높을까?
같은 아파트 같은 동이라도 아랫집 윗집 타일 시공 상태가 다르고 백시멘트의 강도가 다를 수 있다.
특히 오래된 집이면 수공구로 백시멘트를 제거할 수 없는 곳도 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최소한의 시간은 투자를 해야 현장에 나가서 깨지지 않는다고 믿는다.
내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시간은 한 달이다.
물론 이 시간도 100% 충분하지는 않다. 하지만 최소한 이 정도의 시간은 투자를 하고 뛰어 들어야 그나마 실패할 확률이 낮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교육비를 내야 한다
한 때 무료교육이 아니라 돈을 주면서 줄눈시공을 가르쳐 준 적이 있었다.
그 당시의 생각은 줄눈시공을 가르쳐 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노동력을 제공받는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많은 금액은 아니었지만 나름 챙겨주었다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한 번도 아닌 여러 번 뒷통수를 맞다보니 ‘아~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지금은 무조건 교육비를 받는다.
돈 귀한 줄 알아야 열심히 배우고 그 돈이 아까워서라도 악착같이 배우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음 한 켠에는 미안한 마음이 없잖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정했다.
교육비는 조건에 따라 다르다.
가끔 교육을 받고 싶다면서 얼마를 주는지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고 무보수로 일 할테니 시켜만 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나와는 인연이 될 수 없으니 어서 다른 곳을 알아보는 것이 낫다.
매일 출근해야 한다
쉴 것 다 쉬고 놀 것 다 놀고 일은 언제 배운단 말인가?
워라벨? 일정 궤도에 올라섰을 때는 몰라도 지금은 아니다.
출근거리가 멀어서 달 방을 잡든 새벽같이 집에서 나오든 알 바 아니다.
아주 황당했던 상담 사례 : “그 곳까지 가야 해요?”
대화가 끝날 때 쯤 “그곳이 어디에요?” “너무 머네요.”
깊이 고민했고 여러 번 생각했다면 최소한 위치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질문 같지 않은 질문을 들을때면 한숨만 나온다.
출근시간은 있어도 퇴근시간은 없다
현장의 일이 많다면 퇴근시간도 길어진다.
현장의 일이 일찍 끝났다고 일찍 퇴근할 생각이라면 오산이다.
그 날의 현장이 없어도 교육장에서 최대한 연습을 해야 한다.
그렇다고 연습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스스로 알아서 길을 찾는지 지켜볼 뿐이다.
고객에게만 친절하다
할 말 참아 가면서 조분조분하게 알려 드리지 못한다.
“배려” 따윈 창업 이후에나 찾아라.
프로의 세계는 연장자라고 봐주고 여성이라고 봐주는 그런 어리숙한 세계가 아니다.
친절한 선생을 찾으려거든 줄눈 배우는 학원으로 가는게 낫다.
굳이 새벽같이 나올 필요도 없고 더울때는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추울때는 따뜻한 히터 옆에서 나라에서 주는 국비지원도 받으면서 배우면 된다.
하지만 나는 실력없이 친절한 선생이 되기보단 당장에 욕을 듣더라도 제대로 된 기술과 마인드를 심어 주고 싶다.
그래야 살아 남을 수 있다고 믿는다.
줄눈교육 과정 소개
교육은 한 달 과정이며 1:1로 진행한다.
기본적으로 폴리우레아계 줄눈시공법과 에폭시계 줄눈(케라폭시, EG15, 스펙트라락 프로 프리미엄)시공법을 알려 드린다.
이론교육
이름만 그럴듯 해 보일 뿐 이미 블로그나 유튜브에 공개되어 있는데 굳이 억지로 시간 빼기용으로 끼워 넣을 필요가 있을까?
컴퓨터 자판 빨리 치기를 말과 글로 설명하는 것과 같다.
커피 한 잔을 하면서 할 수도 있고 현장 이동 중에도 할 수 있고 현장에서 상황에 맞게 설명해야 더 이해가 잘 된다.
어쩌면 교육기간 내도록 이론교육은 이어질 것이다.
교육장 교육
아시다시피 타일의 특성상 한 번 손상되면 복구가 안된다.
기스 제거제? 타일 보수제? 눈가림일 뿐이다.
그나마 타일을 손상해도 괜찮은 교육장에서 약간의 연습을 한다.
전장에 투입되더라도 기본 교육은 받고 투입되지 않던가?
현장 교육
디아트는 이것이 제대로 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현장이 있을 때 무조건 동행한다.
하루 24시간을 깨어 있어야 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현장에서 계속 보고 눈으로 익히다가 제일 먼저 현관을 한 번 파보고 줄눈재도 시공해 본다.
물론 각 공구의 사용법과 줄눈재의 주입방법, 줄눈시공시 주의사항 등을 그때 그때 안내할 것이다.
익숙해지면 발코니도 파고 최종적으로 욕실까지 시공을 해 본다.
교육생이라고 하지만 일명 보조 역할을 할 것이다.
아마도 타일 기스도 내 보고 타일 모서리도 날려 먹을 것이다.
걱정하지 마라.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그렇게 그렇게 몸에 익혀 나간다.
더 이상 나은 교육방법은 아직 찾지 못했다.
마케팅 교육
처음 교육을 시작할 때 줄눈시공 기술은 10이고 영업이 90이라고 말씀드린다.
교육이 끝마칠 때는 기술이 1이고 영업이 99라고 한다.
제 아무리 날고 기는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찾아주는 고객이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기술을 다 익히면 일이 줄을 서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세상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한 달이라는 교육기간을 가지는 이유는 영업을 준비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기도 하다.
쪽팔리게 남이 시공해 놓은 사진을 자신이 시공한 사진인 마냥 도용할 것인가?
온라인 영업방법, 오프라인 영업방법 등에 대해 설명을 드리고 안내는 하겠지만 선택과 실행은 본인의 몫이다.
내가 생각하는 진짜 줄눈교육
땅 파고 약 넣는 기술?
똥손이든 뭐든 한 달 내도록 주구장창 연습을 하는데 기술이 안느는게 대단하다.
견적 내고 영업하는 방법?
비록 결론은 실행이지만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귀가 닳도록 이야기 하고 문서로 제공하는데 글 못 읽는 사람이 있는가?
내가 생각하는 진짜 교육은 이런 것이 아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해결방법을 찾아내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진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언제까지고 밥을 떠먹여 줄 수는 없지 않은가?
또한 줄눈에 국한되지 않고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겠지만 고객이 모르는 일을 할 때는 높은 도덕심을 바탕으로 일을 해야 한다고 교육한다.
타일 기스 내고 파손했을 때 몰래 감추는 얄팍한 방법도 알려는 주겠지만 고객에게 용서를 구하고 정면 대응토록 교육한다.
경쟁자가 잘 나갈때 아래로 끌어 내리기 보다는 밟고 올라서라고 교육한다.
이런 나의 생각에 공감하고 동참해 줄 수 있는 사람만 인연(因緣)이 되길 기다린다.
남의 인생을 사느라 제한된 시간을 허비하지 마세요
한 때 보험설계사 일을 했다.
평생의 업으로 삼겠다고 다짐하고 시작했지만 지금은 그만 뒀으니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비록 회사는 그만뒀지만 여전히 내가 판매한 상품이 고객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아직도 몇 몇 분들은 연락을 취하고 있을 정도로 부끄럽지 않게 일을 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나는 실패했다.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나에게 있다.
변명이나 핑계 따윈 아무런 소용 없다. 내가 더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 탓 하지 마라. 세상은 원래 불공평 하다.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보험영업에서 실패했기에 줄눈시공을 하게 된 것일 수도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한다.
약간 아쉬운 마음에 만약 보험설계사 일을 하지 않고 바로 줄눈시공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아니라는 의심이 들면 멈추고 고민을 했어야 했는데 그 때는 멈출 겨를도 없었다.
그래서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만약 우리에게 유한한 자원인 시간을 그렇게 허비하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낫지 않았을까?
물론 지금 시점에서의 생각이니 과거를 되돌릴 수도 없고 어쩌면 그 경험이 바탕이 되어서 현재의 내가 있는 결과이니 부질없는 생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아까운 것은 사실이다.
누구처럼 죽고 나서 비석에 ‘우물쭈물 하다가 이럴 줄 알았다’고 쓰고 싶은가?
그것 오역이라고 잘난 체 하면서 계속 삐딱하게 살겠다면 더 이상 무슨 말이 당신을 움직이게 할런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