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날벌레와의 싸움. 겨울은 추위와의 싸움이 줄눈시공자의 숙명이다.
상대적으로 따뜻한 남쪽 지방에 살고 있다는 것이 너무 다행스럽다.
내구성이 요구되는 곳은 에폭시계 줄눈재가 정답이다
건설회사로부터 줄눈시공 의뢰가 들어왔다.
해운대 센텀리더스마크 오피스텔에 줄눈시공을 하고 싶다는 요청이었다.
“폴리싱타일이 깔린 사무실이니까 폴리우레아보다 에폭시가 맞겠죠?” 라며 이미 재료를 염두에 두고 계셨다.
사무실로 사용될 것이기에 줄눈은 충분한 내구성 확보를 고려한다면 나 또한 에폭시계 줄눈이 맞다고 생각했다.
의견이 일치하는 이상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타일의 색상이 아이보리 빛을 띄고 있어서 어떤 색상이 어울릴 지 약간의 고민이 있었지만 가장 무난한 케라폭시 100번 화이트로 선택했다.
줄눈시공 견적을 산출할 때 몇 가지 고려해야 하는 사항이 있다.
- 줄눈시공 부위 및 면적 – 벽 or 바닥
- 타일시공 후 경과시간
- 타일의 크기
일반 주거용 건물에서 가장 시공을 많이 하는 욕실의 경우 특히 견적을 잘 산출해야 한다.
고객의 말씀을 100% 믿어서는 난감한 경우가 많았다.
고객 왈 – 시공한 지 얼마되지 않았고 코딱지 만 한 공간에 보통의 타일이 깔려 있어요.
실제 현장 상황 – 시공한 지 오래 되어서 그라인더 작업을 해야만 하거나 코딱지 만 한 공간이 2평이 넘고 200×200 크기의 타일이 시공되어 있기도 하다.
폴리싱 타일의 경우는 약간 다르다.
몇 년이 경과되어도 백시멘트 줄눈의 겉면만 약간 단단할 뿐 속은 부드러운 경우가 많아서 백시멘트 제거에 애를 먹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이번 현장 센텀 리더스마크의 경우는 달랐다. 아주 많이
폴리싱 타일에 백시멘트를 제거하면서 그라인더 작업을 해 본 기억이 한 두번 있을까 말까 한데 이곳은 그라인더 작업을 해야만 했다.
얼마나 단단한지 그라인더 날을 한 번 교체하기까지 했다.
폴리싱 타일 180장 정도 되는 면적을 작업하면서 백시멘트 제거에만 6시간 넘게 소요되었다.
고층 건물에 창문이라고는 조그만 환기창 하나만 있는지라 방진마스크를 쓰고도 숨쉬기가 곤란할 정도로 작업환경은 열악했다.
사실 폴리싱 타일이라고 할 때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백시멘트가 아무리 단단하다고 한들 폴리싱 타일이니 백시멘트 제거는 쉽겠구나 라고 생각을 했다.
나름 줄눈시공을 오래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센텀 리더스마크는 다시 한번 나를 겸손하게 만드는 현장이었다.
시방에 맞게 시공해야 사기꾼이 되지 않는다
마페이 홈페이지에 케라폭시 관련 기술자료가 있다.
기술자료 문서에는 여러가지 내용들이 있는데 그 중 케라폭시 사용처와 사용법에 대한 부분이 있다.
사용법 중 재료 혼합 후 가사시간은 +12°C ~+30 °C 기준으로 45분이다.
가사시간 – 다액형 이상의 도료에서 사용하기 위해 혼합했을 때 겔화, 경화 등이 일어나지 않고 작업이 가능한 시간 |
만약 가사시간을 넘겨서 시공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실험정신이 투철해서 테스트를 해 볼 수도 있지만 고객의 소중한 공간을 테스트베드로 삼아서는… 하면 안된다.
경험이 축적되면 데이터가 되고 데이터가 쌓이면 정보가 된다.
손이 느린 탓인지 경험상 욕실은 1곳, 폴리싱 타일의 경우 약 5평 내외가 혼자서 시공가능한 가사시간을 충족하는 범위다.
20평이니까 총 4번에 나눠서 시공을 해야만 제대로 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다.
줄눈시공을 빨리 마치고 싶은 욕심에 많은 용량을 한꺼번에 혼합한다거나 재료의 충진을 대충 하게 되면 분명 문제가 될 것이라 믿는다.
물론 그렇게 시공을 한 경우는 한 번도 없기 때문에 아직까지 케라폭시 시공으로 클레임이 걸린 경우는 없었다.
지금까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앞으로도 문제가 생기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공장에서 천편일률적으로 만들어내는 억 대 자동차도 문제가 생기듯 줄눈제품 자체의 불량이 있을 수도 있다.
또한 줄눈시공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이 직접 작업하는 일이라 작업자의 숙련도에 따라 퀄리티가 달라진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시공을 했음에도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이 때 잘못을 인정하고 즉시 AS를 해 준다면 고객 또한 너그러이 이해를 해 주더라. 지금까지는 그랬다.
이번 센텀 리더스마크 현장은 건축설계사무소로 운영될 곳이었다.
고객과의 미팅 중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알고보니 같은 대학, 같은 학과 4년 선배님이셨다.
그 무서운 혈연, 지연, 학연 중 학연에 해당되는 케이스였다.
당연히 학창 시절에 어떠한 교류도 없었고 이야기를 나눠보지 않았다면 전혀 몰랐을 사이였다.
하지만 소위 족보를 따지는 순간 고객님에서 선배님이 되는 끈끈한 동아줄이 되었다.
편하게 생각하면 줄눈시공 결과물이 조금 미흡하더라도 후배에게 모질게 대하시진 않을거라는 마음.
어렵게 생각하면 선배님 사무실인데 더 꼼꼼하게 잘 해 드려야 한다는 마음.
12시간에 걸쳐 작업을 완료하고 나오면서 주차비 3만원 지불했으니 밥 한끼 사달라고 했다.
웃으시면서 언제든 꼭 한 번 들리라고 해 주신 말씀에 뿌듯함과 알게 모를 동질감을 느끼며 막을 내린다.
P.S : 주로 냉동창고 설계를 많이 하신다고 하니 혹시라도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에 냉동창고 설계가 필요하신 분은 연락 바란다.
잘 보고갑니다. 선생님~ ^^
감사합니다. 2021년에도 건강하시고 사업 번창 하시길 바랍니다.